계단에서 / 김현식
페이지 정보
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94회 작성일 21-06-30 20:39본문
계단에서
김현식
계단을 내려갈 때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마, 아무 것도 보지마
오직 계단만 봐, 계단을 무사히 내려가는 데만
신경을 써,
계단 한 귀퉁이에 반 정도 먹다만 자장면이 있는데, 아,
헛발 디뎠어 팔다리가 까지고 이마가 깨졌어
자장면 같은 피가 여기저기 튀었어
것 봐, 기껏 자장면 그릇에 정신을 팔더니
상처투성이야 이젠 얼마동안 걷기도 힘들거야
구석에 처박혀 있는 자장면 그릇에서 나무젓가락이 어지럽게
춤을 추다가는 이내 잠잠해진다
한 계단 한 계단 그저 조심해 오로지 그것만 생각해
그것만이 현실이야 무사히 내려갈 때까지는
꽁초가 말라 죽은 벌레처럼 버려져 있고
난간위에는
커피 마시고 버린 빈 종이컵만이 쓸쓸히 걸터앉아
무심한 마음만 부여안고 있다
그래도 어떻게 해, 모른 체 할 수 없잖아
그것도 현실은 현실인데.
―김현식 시집 『나무늘보』(종려나무, 2009)
광주광역시 출생
전남대 의대 졸업
2006년 계간 《애지》로 등단
시집 『나무늘보』 등
포브스지 선정 대한민국 100대 명의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