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에게 묻지 마라 / 최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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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19회 작성일 21-07-25 18:04본문
돼지에게 묻지 마라
최금진
접을 붙기 위해 수퇘지가 간다
하수도를 끼고 사는 이 동네 출신인
배만 잔뜩 나온 아이들은
돼지가 씹을 하러 가는 재미와
그들의 부모가 밤이면 뒤엉켜 구르는 재미가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한다면 서로 피식, 웃을 것이다
쓰레기장 냄새가 이불에 배고
곰팡이처럼 축축한 아이들이 건넌방에 피어날 때
열등감 혹은 콤플렉스의 발원지는
하수도에 흐르는 저녁 쌀뜨물이었음을
돼지가 모르는 건 당연하다
거대한 몸집 뒤에 왜 그렇게 짤막한 꼬리가 붙어 있는지
왜 나이들면서 이 동네 출신 꼬리표가 따라붙는지
아이들은 모른다
막대기로 돼지의 등짝을 때리면
씩씩거리는 돼지의 분노와 성욕이 만든 입안의 거품은
부글부글 끓는다
그러나 그것이 쓴맛인지 단맛인지,
식탁에 차려지는 흐린 불빛에 대하여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고
저녁 후엔 결론이 뻔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본다
동네 가운데 하수도를 중심으로
아이들은 어른이 돼서도 집과 공장 사이를 흘러다니고
막대기에 얻어맞으며 길을 찾아가는 동안
돼지는 쉴 새 없이 정액을 흘린다
주둥이와 낯짝에 둥글게 걸려 있는 것이
웃음인지 비애인지,
그저 얻어터지며 접이나 붙으러 가는 돼지는
부끄러울 것도 행복할 것도 없다
돼지의 성기는 늘 크고 벌겋다
―최금진 시집 『새들의 역사』(창비, 2007)
충북 제천 출생
1994년 춘천교육대학교 졸업
199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8년 제4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
2001년 《창작과비평》신인상
시집『새들의 역사』 『황금을 찾아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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