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령을 넘으며 / 이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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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60회 작성일 21-08-08 17:05본문
진부령을 넘으며
이건청
진부령을 넘는다.
절개지 건너 쪽이 핏빛 단풍에 젖고,
소방차들이 연거푸 싸이렌을 울리는
단풍 숲 속으로 직박구리 두 마리가
사라진다. 아스팔트 길 옆 대피라인에
차를 세우고,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디지털 카메라 화면에
아내 모습이 선연히 뜬다.
진부령 구비 길을 처음 넘었던 건
30년도 훨씬 전 첫 아이를 잉태한
아내와 함께였다.
상봉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속초행
버스를 탔었다. 한계령 길이 열리기 전이었다.
비포장이어서 버스는 쉼 없이 덜컹거리고
뱃속의 아이 때문에 아내는 좌석에서
선 채로 배를 끌어안고 험한 길을 견뎠었다.
30 몇 년이 지났고, 그때 아내 복중의 아이가
태어나 무용가가 되었고, 대학 강단을 지킨다.
백묵과 지우개와, 온라인 번호와 칫솔과
물에 젖은 두루마리 화장지 같은
30 몇 년 내 길도 비포장 길이었음을
깎아내고 밀어내는 길트기였음을,
오늘, 진부령 고갯길을 오르며 깨닫느니
산이여, 일제히 나부끼는 핏빛 보자기 가득
단풍든 날들을 담아다오.
―이건청 시집 『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 (서정시학, 2007년)
1942년 경기도 이천 출생
한양대학교 국문과 졸업.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박목월 추천)
시집 『이건청 시집』 『목마른 자는 잠들고』 『망초꽃 하나』 『청동시대를 위하여』
『하이에나』 『코뿔소를 찾아서』 『석탄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 『푸른 말들에 대한 기억』
『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 『반구대 암각화 앞에서』 『굴참나무 숲에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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