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에 기대어 / 유행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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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에 기대어
유행두
빨간 크레파스 울퉁삐죽 튀어나온 포스터, 여기 적힌 상금이면 이승복 동상 찢어진 바지 새 걸로 갈아입히고도 목구녕에 껄껄한 보리밥 집어넣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
붉은 색깔 가진 사람이 간첩이라고, 해서 마빡에 막걸리 냄새 뻘겋게 묻히고 다니시던 이장 아저씨가 빨갱이인지 맨드라미꽃 주렁치마에 그려 다니던 강영희 선생님이 빨갱이인지 뻘건 눈알 이리저리 굴리고 다녀도 누가 간첩인지 알 수 없었어
뜨신 물에 우유가루 헐렁헐렁, 건빵 한 바가지 푸스슥 깨사먹는 점심 급식시간, 서울에서 전학 온 국희가 우짜다가 도시락 뚜껑에 지 밥 반이나 뚝 떠서 담아주면 야는 진짜로 간첩이 아니라고 튀어나온 눈알 집어넣고
물기 빠진 똥구녕에서 찌글텅쭈글텅 방귀 몇 번 빠져나가고 나면 편한 자세로 책 펴고 앉으신 세종대왕 동상 아래 앉아
빨간 사람 보이면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간첩을 찾습니다…간첩을 찾아요…간첩을…
―유행두 시집 『태양의 뒤편』(문학의전당, 2009)

경남 하동 출생
2004년 제16회 신라문학대상 시 부문 수상
2007년 <경남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2007년 《서정과현실》로 등단
시집 『태양의 뒤편』, 동화選 『떡할머니 묵할머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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