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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꿈 / 이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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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85회 작성일 21-09-14 21:32

본문

밤과 꿈

 

  이민하 

 

몸통에서 목이 쑥 빠져나온 것 같다

얼굴은 육체의 덤인 것 같다 혹인 것 같다 부록인 것 같다

어떤 부록은 본문보다 길고

 

어깨에서 팔이 쑥 빠져나오고

손목에서 손가락들이 새털처럼 찢어지고

가늘게 떨면서

 

어둠을 털면서

온몸을 기울여 총채를 들고 있다

팔 하나가 인생보다 길고

 

긴 팔이 짧은 팔을 끌면서 하루를 빠져나가는

밤 열두 시의 시곗바늘이다

 

성실한 노동이 연약한 허기를 안고 떠도는

한 쌍의 모녀다

어린 내가 울면 일하던 내가 달려가 흰밥을 짓는다

끊을 수 없는 연대다

 

옆구리를 찌르며 지나가는 입을 털고

두 귀에 묻으면

한 사람의 비밀은 독재자의 나라보다 길고

 

아름다운 트로피를 몰래 닦다가 깨뜨린 하녀처럼

어둠의 구석구석 무릎을 꿇을게

네 방을 보여줄래?

 

반짝반짝 부서진 너를 훔칠 수 있다면

종이비행기처럼 접을 수 있다면

텅 빈 에이프런은 지구보다 길고

 

바람의 항아리가 깨져서 새들은 흩날리고

검은 하늘에 박힌 것들은 내 눈이 닿기 전에 깨져버린 우주의 파편인데

 

거기서도 누군가 총채를 들고 있는 것 같다

깊숙이 과거를 털다가

손이 닿지 않아서

손톱을 길렀다 번개처럼

 

허공을 할퀴며 지나가는 마음을 털었다

차갑고 축축한 모퉁이에 서서

밤의 키스는 죽음보다 길고 

 

이민하 시집 미기후(문지, 2021)



 

전주 출생  
2000년 《현대시 》로 등단  
시집 『환상수족』『음악처럼 스캔들처럼』『모조 숲』『세상의 모든 비밀』
 미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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