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 / 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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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05회 작성일 21-09-23 23:27본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
유홍준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는
둥글다네
나는 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를 좋아한다네
사람이 사람을 앉히고 발톱을 깎아준다면
정이 안 들 수가 없지
옳지 옳아 어느 나라에선
발톱을 내밀면 결혼을 허락하는 거라더군
그 사람이 죽으면 주머니 속에 발톱을 넣어 간직한다더군
평생 누구에게 발톱을
내밀어보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
단 한번도 발톱을 깎아주지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
발톱을 예쁘게 깎아주는 사람은
목덜미가 가늘고
이마가 예쁘고 속눈썹이 길다더군 비가 오는 날이면
팔베게도 해주고 지짐도 부쳐주고 칼국수도 밀어준다더군
그러니 결혼을 안할 수가 있겠어
그러니 싸움을 할 수가 있겠어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는
고양이에 가깝고
공에 가깝고
뭉쳐놓은 것에 가깝다네 그는 가장 작고 온순하다네
나는 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를 좋아한다네
―유홍준 시집 『저녁의 슬하』(창비, 2011)
1962년 경남 산청 출생
1998년 ≪시와 반시≫로 등단
2005년 제1회 젊은 시인상 수상
2009년 제1회 시작 문학상 수상
28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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