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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 이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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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87회 작성일 21-10-04 20:46

본문

가 가장 예뻤을 때*

 

  이병일

 

 

1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름표 겨우 보이는 교과서를 멀리하였다 동네 형들이 학교 가지 말자며 끌고 나녀도 나는 싫어, 라고 말하지 못했다 맨 처음에 싫다고 분명하게 말했다면 무서움이나 두려움 말고 콧노래를 흥얼거렸을 텐데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흐렸고 거짓말만 늘어놓기 바빴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나약해서 자주 돈을 뺏겼고, 올가미로 느껴졌던 형들과의 질긴 관계도 끊지 못했다 형들이 담배 못 피운다고 조롱했지만, 나는 무관심이 제일 힘들었으므로 못된 짓만 골라했다 학교에서 불량 학생으로 찍혀서 불량 식품만 먹고 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저니맨이 되었다 벌써 세 번째, 중학교 두 번, 고등학교 한 번, 방황을 끝내고 돌아왔지만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함께 굴러다니는 모나미 볼펜만 "그래 놀아라, 기죽지 말고 더 놀아야 한다."라고 속삭였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내가 하는 말은 가식이었고 허세였고 수식이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2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빨리 어른이 되어서 독립하고 싶었다 제멋대로 하고 싶었다 미술 학원에 등록했지만 떠든다고 선생님께 뺨따귀를 맞았다 고막이 윙윙거렸다 집에 와 학원 때려치운다고 하니까 그러면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다! 형은 비아냥거렸다 돈 까먹는 거머리 새끼라고 말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나답다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하는 말은 변명이라고 또 비웃을 테지만 나는 자긍심이 없었으므로 용기를 가져야 했다 내 생각은 그동안 어디에 있었지? 생각 없이 살아왔지만 생각 있게 살아 보기로 마음먹었다 용서해라, 친구들아 그사이 일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다 그레고르 잠자의 몸이 흉측한 벌레로 발견되었을 때 충격을 받았지만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거머리이므로, 이젠 거머리로 살아야 하니까

 

3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읽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어떻게 구원할까? 이런 생각을 오래 곱씹었으나 나는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뭔가 곱고 아스라하게 빛나는 것인 줄만 알았으니까 그림을 그리면서 악기를 다루면서 시를 쓰면서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아름다움이란 처음 가는 마음이거나 팥 냄새 나는 할머니의 절굿공이, 시월 해질녘 들깨밭의 희붐한 먼지들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자 답글이 마구 달렸다 센스 있다는 말이 가장 좋았다 한 가지의 꿈도 실현되지 못했는데, 소통하는 것도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즐거움이 생겼다 하루에 한 번 비타민C를 챙겨 먹고 힘이 솟길 기도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창밖에서 우는 조막만한 붉은 새가 알은 체했지만 이름을 몰라서 그냥 딱새라고 불렀다 그래도 다행인 건 조금씩 아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만만해지는 것도 조금씩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제목을 빌려 옴.

  

이병일 시집 처음 가는 마음(창비, 2021)



leebi.jpg

1981년 전북 진안 출생
2002년 병영문학상 가작 수상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시모임 '뒤란' 동인
2005년 <평화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2007년 ≪문학수첩≫ 등단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
시집 『옆구리의 발견』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
처음 가는 마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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