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면 / 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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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748회 작성일 15-12-23 10:22본문
구면
김 언
나는 몰라요. 당신 이름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나도 몰라요. 당신 생각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가서 만져봅시다. 음 이렇게 생겼군요.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워요. 딱딱하고 거칠게 다루지 마세요.
이건 생각이니까요. 이건 이름이잖아요.
그건 당신 생각이에요.
내 생각도 당신과 다르지 않아요.
그건 내 생각이에요.
뭐 이렇게 생겨먹은 이름이 다 있어.
보다보다 이런 생각은 또 처음 보네.
말을 함부로 하는군요. 이름이 그 모양이니.
당신 생각도 썩 좋은 인상은 아니랍니다. 생각이 그 모양이니.
우리의 첫인상은 이렇게 결정되는군요.
하루가 열두 번 지나고 한 달이 열두 번 지나고
일 년이 열두 번 지나서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얼마 만인가요? 우리의 첫인상을 만나는 게.
태어나서 영영 못 볼 줄 알았답니다.
이렇게 만져보니 어때요? 우리의 첫인상.
처음이니까 아직은 생소해요. 간지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욕도 많이 했어요. 우리의 첫인상에 대해.
내 말은 여전히 생각 중이고 당신 이름도
여전히 고민 중인가요? 그건 앞으로의 일이고
만져보니 벌써 구면입니다. 십 년 전 당신의 이름.
십이 년 전 당신의 생각. 열두 달도 더 전에
결정된 그 생각을 나도 모르게 찾아가는 손바닥.
너도 모르게 맞이하는 뺨따귀를 향해.
1973년 부산 출생
부산대 산업공학과 졸업
1998년 《시와 사상》 등단
시집 『숨쉬는 무덤』『거인』『소설을 쓰자』『거인』』『모두가 움직인다』
2006년 대산창작기금 수혜
제9회 미당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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