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화 / 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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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29회 작성일 21-11-22 20:34본문
점화
강인한
인화지에 웃음이 스며들기 직전의
여자
눈빛이 주위의 풍경을 빨아들인다.
거기에 모른 척 빨려든 적이 있다.
흰 바탕에 파란 체크무늬 원피스 산뜻한
오전 한때
깨끗한 기쁨을 손으로 까서 내 입에 넣어 준다.
박하향이 날 것 같은,
아이스크림 같은 구름의 오월.
우리들 곁으로 둘씩 둘씩
손잡고 팔랑거리는 노란 유치원생들.
얕은 하늘에 나직이 떠서
새는 왜가리,
아랫도릴 벗고 알몸으로 날아가는 왜가리.
열쇠를 꽂아 시동을 걸며
'삽입!'
가벼운 파열음을 비눗방울처럼 띄우며 웃던
여자,
목을 맨 게 겨울이었다.
목덜미 아래로 가늘고 흰 손가락이 흘러
진초록에 금빛 네일아트가 빛났는데
여자의 몸속에는
세찬 여울이 있었나 보다.
카네이션 두 송이 쓸쓸한 납골함 주변에
잔인한 시간을 호명하는 바람소리.
'삽입!'
분홍 입술의 파열음. 시든 꽃의 셀로판지가
투명한 소리를 낸다.
ㅡ강인한 시선집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문예바다, 2021)
1944년 전북 정읍 출생
전북대학교 국문과 졸업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 『이상기후』 『불꽃』 『전라도 시인』
『우리나라 날씨』 『칼레의 시민들』 『황홀한 물살』
『푸른 심연』 『입술』 『강변북로』,
시선집 『어린 신에게』, 시비평집 『시를 찾는 그대에게』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등
1982년 전남문학상, 2010년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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