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 김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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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94회 작성일 21-11-23 21:15본문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김왕노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르고 떠난 후 난 자작나무가 되었다
누군가를 그 무엇이라 불러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때로는 위험한가를 알지만
자작나무나 풀꽃으로 부르기 위해
제 영혼의 입술을 가다듬고
셀 수 없이 익혔을 아름다운 발성법
누구나 애절하게 한 사람을 그 무엇이라 부르고 싶거나 부르지만
한 사람은 부르는 소리 전혀 들리지 않는 곳으로 흘러가거나
부르며 찾던 사람은 세상 건너편에 서 있기도 하다
우리가 서로를 그 무엇이라 불러준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무엇이 되어 어둑한 골목이나 전쟁터에서라도
환한 외등이나 꽃으로 밤새 타오르며 기다리자
새벽이 오는 발소리라도 그렇게 기다리자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불러주었듯
너를 별이라 불러주었을 때 캄캄한 자작나무숲 위로
네가 별로 떠올라 휘날리면 나만의 별이라 고집하지 않겠다
네가 나를 자작나무라 부를 때 난 자작나무가 되었다
ㅡ계간 《문학과 사람》 2019년 여름호
1957년 포항출생
1988년 공주교대 졸업
1992년 대구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말달리자 아버지』.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사진 속의 바다』 『그리운 파란만장』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 『이별 그 후의 날들』
『복사꽃 아래로 가는 천년』 등.
2003년 한국해양문학대상, 제7회 박인환 문학상, 제3 회 지리산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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