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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오징어 / 안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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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95회 작성일 21-12-20 21:20

본문

왕오징어 


  안정혜

 

  

버스정류장 앞 전봇대에

오징어 한 마리가 매달려있다

무담보 대출, 즉시 가능

갑오징어 등 위에 바다체로 찍혀 있다

가위질로 가랑이진 다리에

빨판처럼 붙어 있는 휴대폰 번호

불량한 신용도 다 떠맡아주겠다고

꾸덕꾸덕 말라가는 피데기에서

난바다 파고를 헤치던 숨소리가 들린다

담보물 없어도 즉시 수혈해

명줄을 이어주겠다는 대왕오징어

허울만 좋은 대왕의 말에 속아

저 다리 덥석 찢어 질근질근 씹다가

송곳니 잃어버린 사람이 많다던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대왕오징어

저 검은 흡반으로

사정없이 피를 빨아댈 텐데

대왕오징어의 낚시질에 코가 걸렸나?

파랑 지는 물살 헤쳐 오느라

흠뻑 젖은 바짓가랑이 하나가

대왕의 다리를 찢고 있다

 

 2010년 계간 시안신인상 당선작 중

 


  

경북 봉화 출생
2010년 계간《시안》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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