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프와 젖꼭지 / 구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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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프와 젖꼭지
―나 다니던 초등학교, 사창가에 있었다
구광렬
1
창근이네 집에는 누나들이 많았다 난 녀석의 친누나들이라 믿었고 그녀들, 더운 날에도 짙은 화장을 했다 마당 한가운데 뽐뿌 물에 등목을 할양이면 토종참외만한 유방들이 덜렁거렸는데, 사이사이 돈을 다발로 끼워줘도 그 꼭지만은 못 빨게 했는지 팥알만 한 것들, 갓 잡은 암 다랑어 속살보다 붉었다
어린애가 보기에도 어린애 같던 계집들. 비싼 울음을 싸게 파느니 싼 웃음을 비싸게 팔겠다는 듯, 사이사이 신음 아래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아껴놓은 눈물방울들, 세상이 양껏 울음 울 수 있을 방을 주고 열쇠를 줄 때까지 젖꼭지에 매달아 놓겠다는 듯, 봄비 맞은 앵두 알처럼 뽐뿌 아래서만 반짝였다
2
그럼에도 창근이 아버진 서예가였다 색색거리는 소릴 듣고도 붓 흔들림이 없었다
마당에선 일 끝난 누나가 뽐뿌질을 하고, 어린 우린 안방기둥을 잡고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고, 창근이 어머닌 숱 빠진 사리빗자루를 들고선 ‘장사 망친다’ 후려치고…… 하지만 창근이 아버진 결코 떨리지 않는 손으로 한 획 한 획, 정성스레 그었다
술래잡기 끝나고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온 난, 펌프 물 속 그 젖꼭지들이 하 삼삼해, 밤새 엄니의 소 안창살보다 더 검은 젓꼭지를 눈으로 가져가다가, 뺨 싸대기를 얻어맞았다
―계간 《문학과 사람》 2021년 겨울호

1956년 대구 출생
멕시코 국립대학교(UNAM)에서 중남미문학을 공부
1986년 멕시코 문예지 《마침표 El Punto》에 작품을 발표하며 중남미문단에 등단
한국문단에서는 오월문학상 시 부문 대상 수상 및 현대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시작
한국어 시집으로 『슬프다 할 뻔했다』 『불맛』 등
『하늘보다 높은 땅』 (La tierra más alta que el cielo) 『팽팽한 줄 위를 걷기』(Caminar sobre la cuerda tirante) 등
다수의 스페인어 시집
UNAM 동인상, 멕시코 문협 특별상, 브라질 ALPAS XXI 라틴시인상 International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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