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녀의 기분 / 박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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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녀의 기분
박상수
마지막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에겐
날개를
조금 먹고 조금 사는 금붕어에겐
알약을
종일 유리공을 불고 종일 금 간 유리공을 쓰고 돌아다니는 지구인들의 거리를 지나왔죠 난 자랄 만큼 자랐고 놀란 노루처럼 귀를 세울 줄도 아는데
비가 오는 날은 도무지 약이 없어요
기분은, 비단벌레들이 털실을 다 풀면 돌아올 테고 영원히 살지는 못하겠지만 스카프를 두르고 오래된 그림책 위를 날아가네요, 꿀을 넣은 작은 홍차를 마실 거예요, 시간과 공간의 모눈종이를 펼치면 난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가슴으로 자주 비가 스며들어온답니다 뢴트겐 씨를 부르고 심장을 얼린다면 살 수 있을까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의 거리를 유리온실로 덮어주고 내 기분은 다음달에 바다로 갔다가 화산을 구경하고 2층 버스를 타고 없어질 거예요 누가 뭐래도.
―박상수 시집 『숙녀의 기분』(문학동네, 2016)

1974년 서울 출생
명지대 대학원 문창과 박사과정 수료
2000년 《동서문학》시부문, 2004년 《현대문학》 평론 등단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 『숙녀의 기분』
평론집 『귀족 예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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