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뒤축 / 정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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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뒤축
정두섭
굽 닳잖게 살살 가소
얼매나 더 산다꼬
잦바듬한 달이 간다 살 만큼 산 달이 간다
작년에 갈아 끼운 걸음으로 아득바득 가긴 간다
너저분 문자향을 공들여 염하고서
널브러진 서권기 오물오물 씹으면서
골목을 통째로 싣고 살 둥 죽을 둥 가긴 간다
참 서럽게 질긴 목숨이 등허리 휜 달빛을
닳고 닳은 달빛을 흘리지 않아, 시방
만월동
만월 수선소 일대가 무지로 깜깜하다
―2022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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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당선소감 / 정두섭
기별도 없이 늦가을이 들이닥쳤다. 또 온몸이 가렵다. 그렇게 새봄 앓이를 다시 시작했다.
이름하여 신춘이라는 병. 부재중 전화에 혹시나 해 걸어도 걸어도 다시 걸어도 통화 중이다.
피가 더 마르기 전에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광고다. 손이 울었다. 02-780-0000. 덜컥 내려앉았다.
드디어 때가 되면 온다는 기별이 오시는가.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대통령 후보 허경영입니다. 존경하지는 않지만 이런 양반 하나쯤 있어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욕이 나왔다. 사실 나는 ‘이런 양반’이 되고 싶었다. 하나쯤 있어도 괜찮은
다른 목소리의 양반, 아니 내 목소리라면 상놈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러나 누가 이런 양반놈을 뽑겠는가.
한때는 주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빌고 또 빌어도 한 문장 발기하지 않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것이냐, 詩야! 습관처럼 절망하다, 욕하다, 포기할 때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경남’이었다. 이 턱 저 턱 없다, 연락들 하지 마시라. 쓰기는 쓰되, 함부로 쓰지 말고 아껴 쓰자
새삼 다짐했으니까. 중언부언 지우고, 있어도 그만 빼고, 없어도 그만 버리면서 한 글자 두 글자 정말
아껴가며 딱 세 줄만 쓸 생각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2015년 제11회 시마을문학상 대상 수상
2020년 '신라문학대상' 수상
2022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 정두섭 시인은 시마을에서 필명 '무의'로 활동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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