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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속의 문 / 윤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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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44회 작성일 22-01-27 12:39

본문

속의 문

 

  윤석호

 

종이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면

선을 따라 벽이 자라며

세상은 돌연 안밖으로 나누어진다

 

멀쩡한 벽에 구멍을 뚫고 문을 만든다

마치 처음부터 문을 위한 벽이었던 것처럼

 

숨을 벽에 가두고

능숙하게 문을 여닫으며 관악기가 음을 만들어낸다

스위치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건전지 속 열망이 어떻게 전구를 불태우며

빛날 수 있었을까

고독하지 않고는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듯이

모든 것을 막음으로써 벽은 문을 부추기는 걸까

 

벽이 사라진 사막은

알갱이 하나마다 각자의 벽을 만들고는

풀 한 포기 키워내지 못한다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와 그를 알기 전까지

나는 벽을 몰랐다

미로 같은 생의 한복판에서

그는 막아섰지만 가두지 않았고

두드리는 곳 어디에나 금새 문을 만들고 품어주었다

아픔이었지만 사랑이었고 벽이었지만 문이었다

 

종이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위에 작은 문을 만들면

모든 아름다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1964년 부산 출생
2011년 미주중앙신인문학상》 당선

201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4인칭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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