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를 지나는 구름의 시간 / 조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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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를 지나는 구름의 시간
조수일
어제의 시간을 모과의 오후라 부를래요
홀로 폭삭, 익어버렸으니까요
그림자를 벗어 놓고 떠나온 남녘의 어느 바닷가였어요 간간히 드나드는 바람이 유일한 여행자, 쓸쓸히 낡아갈 일만 남은 저물녘에 덧씌우는 당신의 방식을 힘껏 비켜서고 싶었어요 시야 밖, 홀로 영글어 오래오래 매달린 가을볕의 샛노란 꿈이 나였으면
타인의 시간으로 비행을 일삼는 나는 더는 꽃일 수 없는 야생일까요 수직의 통증처럼 우르르 떨어지는 낙과가 당신일까요 갈변이다가 파묻혀 벌레 슬어가는 최후일까 봐 훌쩍도 거렸어요 높이 걸려 염탐을 일삼는 당신은 꿈의 꼭짓점, 끝내 발굴되지 않는 향기로운 꽃무덤이고 싶었던 나는 이유 없이 줄곧 어두워가는그늘이었으므로, 암각이었으므로 그 점에 이어져 있었어요
뚝뚝, 파발처럼 나를 선회하는 한 무리 구름은 오랜 내일이니까요
―조수일 시집 『모과를 지나는 구름의 시간』(시산맥, 2022)
전남 나주 출생
전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2017년 계간 《열린시학》 등단
제1회 송수권문학상 수상
시집 『모과를 지나는 구름의 시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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