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이 물끄러미 서 있었다 / 염창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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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이 물끄러미 서 있었다
염창권
어둠은 아직 서쪽 어둠을 향해 몰려갔다
기차는 떠났다, 플랫폼을 스치며
상처가 긴 터널을 뚫는다, 행선지가 또 어둡다
당신을 찾아온 이곳은 십 년 전이다,
두툼한 어둠의 봉투 같은 객석에는 섬세한 누벨바그, 감수성이 접속된다, 희붐한 새벽빛이 철길을 밀고 나갈 때 평행으로 이어진 슬픔, 그걸 통과하는데
날아든 새 울음소리가 묘석 위로 떨어진다,
외등을 켠 눈빛으로 널 찾았던 기억처럼
십 년의,
딱딱해진 척추를 펴며 일어설 때
흐릿한 입간판 너머로 눈발이 붐비는지
영화관 귀퉁이에 냉담이 서 있었다,
갸웃이 일어서던 지평선이 잦아들더니, 후각과 촉각이 저지르는 진동음은 가상이 아니었다, 실물 그대로의
싸늘한 스크린 밖에서 감정을 쬐며 녹였다.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 2022년 2월호

1960년 전남 보성 출생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졸업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한국비평문학상, 광주펜문학상, 중앙시조대상, 노산시조문학상 등 수상
시집 『그리움이 때로 힘이 된다면』 『일상들』 『한밤의 우편취급소』 『오후의 시차』
시조집 『햇살의 길』 『숨』 『호두껍질 속의 별』 『마음의 음력』,
평론집 『존재의 기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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