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구름들 / 서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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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구름들
서정임
소리가 부서지고 있다
몇 동 몇 호인가
누군가 떠난 흔적을 지우는 소리가
드높이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잡아먹고 있다
거실 바닥과 화장실과 싱크대가 뜯겨나간다
베란다와 창문이 실려나간다
갑자기 솟아오른 회오리바람 같은
강력한 소음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아파트
며칠 전 리모델링 동의서에 서명을 한 나는 이사 간 얼굴들을 떠올린다
엘리베이터나 계단이나 우리는 단 한 번 마주치기라도 했을까
바닥을 딛고 일어선 두 발이 없는 구름들은 눈 코 입을 가지지 않는다
바람이 부는 대로 바람의 세기를 타고 왔다 떠나갈 뿐
어느 한 곳에도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뒤늦게 열어본 부동산 홈페이지
가파르게 오르고 오른 시세가 끝이 보이지 않는 층층 계단을 만들고 있다
얼굴 없는 얼굴과
어제 없는 얼굴과
오늘이 없는 얼굴들 속에서
나는 그동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만을 외치는 술래였던가
저 뜨거운
우리의 버릴 수 없는 노마드식 사랑법
나를 대신할 술래가 없는 나는
단단히 못 박혀있던 발끝의 들썩임을 가만히 짓누른다
―계간 《시와소금》 2021년 가을호
전북 남원 출생
2006년 계간 《문학·선》등단
2012년 경기문화재단의 문예창작지원금 수혜
시집으로 『도너츠가 구워지는 오후』『아몬드를 먹는 고양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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