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선물 / 박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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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선물
박상수
걸어도 걸어도 무엇도 보이지 않는 나날이 계속된다면, 갖고 싶어 햇살이 오래 들어오는 2층 창가, 담쟁이덩굴이 흔들리고 윤기 어린 나무 탁자 위로는 바스켓 화분이랑 핸드메이드 유리 동물들이 도란도란 모여 있는 곳, 어른대는 빛 속에서, 내게로 다가오는 아이들이 있구나, 밝게 뛰어와서 내 발에 털을 부비는구나,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마, 지금 네 손에 뭐가 닿는지만 생각해, 아이들을 쓰다듬으며 모나카 아이스크림을 조금씩 나눠먹으며 나무 위 오두막에서 맞는 좋은 바람 같은 것, 종이 목마가 흔들리는 시간, 나는 여기서 들려오는 오후 네 시의 시간들을 좋아하지 옛날 양옥 건물 사이를 지나 학교 운동장의 쉬는 시간을 지나, 좁은 길을 겨우 빠져나가는 스쿠터의 소리까지 전부 구별하고 색칠해 보자 그러는 동안 건널목 가까이 낮게 비구름이 다가오는 순간을 사랑하지, 장작불로 직접 볶아 내려주는 커피를 스마일 쿠키 한 세트가 필요해요, 창밖으로 눈을 돌리며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기로 하지 나날이 막막하고 또 너무 많지만, 저기 나무 의자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과 다른 시간의 곁이 있다면.
―박상수 시집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현대문학, 2022)

1974년 서울 출생
명지대 대학원 문창과 박사과정 수료
2000년 《동서문학》시부문, 2004년 《현대문학》 평론 등단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 『숙녀의 기분』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 등
평론집 『귀족 예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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