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하는 사람의 세 질문 / 이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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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는 사람의 세 질문
이현승
쫒고 쫒기는 것들은 막다른 길에서 만난다.
그리하여 휴일이란 무엇인가
휴일은 답이 비워진 질문이다.
그 진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청소기를 붙잡는 것이 좋다.
포효하는 호랑이의 등을 타고
구석구석 누비며 묻는다.
청소란 무엇인가.
쓰러진 것을 세우고
널부러진 것을 개키고 걷어 올리며
만상의 제자리를 의심해 보는 시간,
잠이 덜 깬 채 식탁으로 불리어 온 식객처럼
구석에서 끌려나온 검불들은 뭉쳐진 채 잔뜩 뾰로통하다.
부스스한 머리에 입술이 비죽 나왔다.
난데 없는 소란 속에서 다시 묻는다.
구석이란 무엇인가.
머리카락과 몽당연필과 동전과 머리 고무줄과 레고 블록 같은 것들의,
먼지와 검불들의, 불 꺼진 곳을 찾아 헤매는 자들의 안식처
지질한 마음도 잠시 어깨를 펴보는 그 곳.
직진하는 빛과 걸레질의 사각지대에서
청소기의 잦아든 숨소리를 배경으로 몽상은 계속된다.
마음이 사각형이라면 네 개의
그러니까 어느 쪽을 향하든 그 끝에는
어두운 구석이 있다.
―월간 《현대시》 2022년 2월호
1973년 전남 광양 출생
1996년<전남일보>신춘문예 당선
2002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 수상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시집 『아이스크림과 늑대』『친애하는 사물들』
『생활이라는 생각』 『대답이고 부탁인 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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