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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갈 곳이 없다 / 여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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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00회 작성일 22-03-07 21:42

본문

망갈 곳이 없다

 

  여태천

 


모든 게 분명해졌다.

밤이 끝나면 아침은 늘 그렇게 온다.

 

뭐지 그 표정은

왜 그렇게 웃는 거야?

 

겨우 일부만 살아남은 뭉개진 표정으로

기억에 의지한 채 묻는다.

안 봤으면 좋았을까.

 

힘드네.

목소리는 낯설지만

얼굴은 조금씩 분명해진다.

그 말을 듣는 건 누구나 힘들다.

 

어떤 거미는 사랑하는 이를 칭칭 동여매고 집어삼킨다는데

서로를 알고 있다는 건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인가.

그곳은 얼마나 멀리 있는가.

아무도 모르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아침에

지고 만다.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지만

삶은 언제나 힘에 부친다.

 

어제의 사랑이 씻겨나갈 것만 같아

칫솔에 물만 적셨다.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20223월호




 

1971년 경남 하동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200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국외자들』 『스윙』 『저렇게 오렌지는 익어가고

감히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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