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그늘 속, 검은 잠 / 조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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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그늘 속, 검은 잠
조유리
한 샆 푹 퍼서 언덕 아래로 뿌리면 그대로 몸이 되고 피가 돌 것 같구나
목단 아래로 검은 흙더미 한 채 배달되었다
누군가는 퍼 나르고 누군가는 삽등으로 다지고
눈발들이 언 손 부비며 사람의 걸음걸이로 몰려온다
다시 겨울이군, 살았던 날 중
아무것도 더 뜯겨나갈 것 없는 파지破紙처럼
나를 집필하던 페이지마다 새하얗게 세어
먼 타지에 땔감으로 묶여 있는 나무처럼 뱃속이 차구나
타인들 문장 속에 사는 생의 표정을 이해하기 위해
내 뺨을 오해하고 후려쳤던 날들이
흑빛으로 얼어붙는구나
어디쯤인가, 여기는
사람이 살지 않는
감정으로 꽃들이 만발하네
죽어서도 곡哭이 되지 못한 눈바람이 검붉게 몰아치는데
―조유리 시집 『흰 그늘 속, 검은 잠』 (시산맥, 2018)

서울 출생
2008년 《문학·선》으로 등단
시집 『흰그늘 속, 검은 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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