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 차는 노인의 후반전 / 정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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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차는 노인의 후반전
정익진
그는 투명한 연기처럼 움직인다. 산 중턱에 걸려 있는 장대를 넘고 바다 위에 흐르는 강을 건너고 하늘에 뚫린 소실점을 향해 날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는 편이다. 뭘 보는지도 모르면서 구름에서 토끼가 떨어질 때까지, 눈썹 위에 열 마리의 파리를 붙인 채로 노려보다 눈물이 고이면 죄 없는 깡통을 찬다.
순수이성비판은 우리에겐 맞지 않소. 순수는 무슨 순수요. 순수가 결핍되어 비판받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오. 나의 보폭대로 걷다 내 방향대로 살다 가면 그뿐이요. 그래서 그의 그림자는 길다. 얼마나 긴지 죽을 때까지 걸어가서야 그림자의 끝을 밟고 깡통을 찰 수가 있다. 여러 가지를 의심하는가 하면 한 가지에 꽂히면 요지부동, 큰 바위에 새긴 맹세처럼 옮길 수가 없다.
떨어지는 발바닥과 바람에 날리는 손바닥을 의심한다. 뭘 의심하는지 모르면서 집요하게 의심한다. 깡통을 차 보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불안하다.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닌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종잡을 수 없다. 새를 가리키면 나비를 바라보고 나비를 지적하면 까마귀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항상 두리번거린다.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두리번거리다 깡통을 찬다.
불가사의하고 예측 불능한 일들이 창밖에서 혹은 대기권에서 늘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다. 그 밖의 실체도 인정하지 않고, 그 밖의 진실은 건강을 해친다고 믿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도 불신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면서 불신한다. 어차피 불신 지옥이다.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이미 시체들의 밤놀이에 참석해서 깡통을 찬 지가 오래다.
―웹진 《같이 가는 기분》 2022년 봄호
부산 출생
1997년 계간《시와 사상》등단
시집으로 『구멍의 크기』『윗몸일으키기』『스캣』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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