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한 월식 / 이경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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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740회 작성일 16-01-14 09:31본문
팽팽한 월식(月蝕)
이경교
저기 누가 옥수수 속껍질을 벗기고 있다, 물방울
켜켜이 접혀진 봉투, 봉투의 은밀한 막이 찢어진다
새가 막 알을 깨고 나와 처음으로 어미를 바라본다
눈동자의 투명한 막이 벗겨진다, 초록 잠을 건너온 꽃잎들 끈적거리는 양수를 뚫고 나와 새로 피어나는 잎새들
젖어 있는 것들의 껍질에서 흘러넘치는 수액 향기
저기 누가 물껍질, 그 얇은 문을 두드린다
불 꺼진 창에 기댄 여자의 그림자가 흔들린다
안개 자욱한 실내, 처음으로 문을 연 사내의 흐릿한 실루엣 점점 짙어진다, 만남은 반드시 어둠을 지나가야 한다
첫눈을 뜬 여자의 눈망울이 그림자와 겹쳐진다
탱탱한 정적의 한 순간이 깨어진다
누구나 문을 지나온다, 그때 속껍질은 부풀어 벗겨진다
그 무렵, 누군가 옥수수 알을 베어 무는 것이다
어둠 바깥으로 선명한 이빨자국만 남는 것이다
저기 누가 물껍질, 그 얇은 문을 들어선다
1958년 충남 서산 출생
1986년 《월간문학》 등단
동국대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꽃이 피는 이유』『달의 뼈』『모래의 시』등
시 해설서 『한국 현대시 이해와 감상』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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