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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사진 / 김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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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94회 작성일 22-04-0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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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의 사진

 

    김윤이

 

 

  당신이 보고자 했던 사진을 이제야 보내드립니다 제가 늘 돌아나오는 곳은 뿌연 유리문 너머, 거북이상회로부터 얼비쳐나옵니다 그 거북이처럼 움츠러들었던 햇빛, 오후가 되자 졸음으로 깊어집니다 사시사철 옥수수를 삶는 아주머니 양철함지에 굽이칩니다 극장 벽보 여자의 헤벌쭉한 웃음에 깃듭니다 이내 바람 에돌아서 머츰해진 한길 누운 낭인 오래도록 내려다봅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더이상 오후의 햇빛 담아둘 곳 없다고, 감광지 그만 사진 현상시키려는 찰나, 당신의 백태 같은 눈에서 쏘아나오는 빛 보게 되었습니다 그 빛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건너편의 노벨양복점, 그 명패에서 반짝거리더니 마침내 승리주점과 돈()식당, 나란히 자리 잡은 에덴화원마저 태워버렸습니다

 

  회상으로 나를 장악하고 있던 햇빛 노출되었습니다 잉걸불에서도 왜 화하지 않는지. 날마다 쇠잔해지는 기억도 이제 하얗게 살라져야 하는 것을. 즐비한 오후, 비끄러맨 빛들 흘러갑니다 건너오는 하나가 깜깜하게 반짝입니다 이제야 제가 보내드린 사진에 왜 그을음 가득한지 아실 겁니다

 

김윤이 시집,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창비, 2011)

 


kim-yooni-140-2.jpg

 

1976년 서울 출생. 본명 김윤희 

2006 연세대 윤동주 문학상 시부문 수상
2006 계명대 계명문화상 시부문 수상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독한 연애』『뒤뚱뒤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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