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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 하나의 슬픔 / 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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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92회 작성일 22-04-12 20:02

본문

하나의 슬픔

 

    김 언

 

 

  컵 하나를 생각하다 보면 컵 하나의 슬픔이 보인다. 보이다가 안 보이는 슬픔도 보인다

슬픔은 담겨 있다. 컵 하나가 있으면 컵을 둘러싸고 맺히는 물방울도 슬픔의 모양으로 

둥글고 슬픔의 자세로 흘러내리고 슬픔의 말로가 되어 말라가는데 말라붙는데 컵 하나는 

덩그러니 컵 하나는 엉뚱하게 컵 하나는 재질과 상관없이 컵 하나의 모양과 자세와 성정까지

다 담아서 슬픔의 기둥으로 슬픔의 웅덩이로 슬픔의 틀린 말로 슬픔의 그릇된 호명으로 

계속해서 네 네 대답하는 슬픔의 자동 응답기처럼 컵이 있다. 하나가 있고 둘이 있고 셋이 

있어도 컵은 컵이고 슬픔은 안 보인다. 안 보이는 게 차라리 나았다 싶을 정도로 흘러넘치

슬픔을 한 잔 따르고 두 잔 따르고 세 잔째는 이미 폭탄처럼 이것저것 다 들어가서 어지러움을

동반하고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컵 하나의 용도는 계속 슬픈 것. 계속 슬프라고 서 있는

. 아니면 진작에 쓰러졌을 내가 무슨 정신으로 서 있겠는가. 비우자고 서 있다. 계속 따르라고

컵이 있다.

 

ㅡ《현대문학20213월호



20090921000045_0.jpg


1973년 부산 출생

부산대 산업공학과 졸업
1998년 《시와 사상》 등단
시집 『숨쉬는 무덤』『거인』『소설을 쓰자』『거인』』『모두가 움직인다』 
 백지에게』 
2006년 대산창작기금 수혜
제9회 미당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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