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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로 온 아리랑 / 정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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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70회 작성일 22-04-24 19:14

본문

배로 온 아리랑

 

    정재학

 

 

1

아리랑을 주문한다

늦어도 모레 아침에는 도착할 것이다

사실 무엇이 올지 모른다

사진도 제조사도 없었던 아리랑

그저 글자만 있었던 아리랑

나는 어쩌자고 아리랑을 주문한 것일까

아리랑은 말랑말랑한 것 같다

먹을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딱딱할 리가 없다

아리랑은 곡선일 것이다

타원 모양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구슬 속의 오색 때에 가까울 수도 있겠지만

아리랑은 직선일 리 없다

 

 

2

택배가 도착했다

바스락거리는 포장지를 비집고

아리랑이 흘러나왔다

얼굴은 보여주지 않는다

아리랑은 뒷모습으로 다가온다

아리랑을 뒤에서 안으려 하자

거인처럼 부풀어 올라 안을 수 없었다

소리를 듣는 것만 허락되었는데

빠르게 부르면 흥이 되고

느리게 부르면 한이 되고

아리랑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이 노래를 부르며 울기만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깔깔대지는 않았더라도

약간의 코웃음이 섞여 있다

코웃음과 한숨의 경계에 한 방울의 눈물이 떨어진다

 

3

아리랑은 오늘 아침에 팡팡 팝콘이었다가

점심에는 시큼한 김치였다가

저녁에는 고요한 수박의 검은 줄이 되었다

밤에는 서걱거리는 사막이 될 것이다

오늘 밤 당신은 그 사막을 건너는 낙타가 된다

낙타는 아리랑을 닮은 언덕을 달고 있다

내일 아침에 아리랑은 달팽이가 될지도 모른다

월간 현대시20223월호



 

200805290059.jpg


1974년 서울 출생

1996년 《작가세계》로 등단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시집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광대 소녀의 거꾸로 도는 지구』
『모음들이 쏟아진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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