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나사 실종 사건 / 이향지 > 오늘의 시

​나비나사 실종 사건

  이향지

천장에 꼭 붙어 있었겠죠 나비나사는

조여주는 손이 풀어주는 손이 아닐 때도 달아나지 않겠죠

사람의 말로 사람의 온도로 쓰다듬어 준 적 없는 부속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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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독약도 어떤 반창고도 대신 할 수 없는 나사 하나

찾아놓고 연락주세요, 수리공은 떠났네

헤집어놓고 봉합 못 한 수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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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서서 모두가 지켜보았으나 물건들은 다만 나서서 말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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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가운데 작은 구멍 하나

쥐꼬리처럼 내밀고 있는 전선 두 가닥

천둥을 멈추고 벼락을 막아줄 절연테이프 감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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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를 부르고 물안개를 펼치고

달과 별을 매달아 줄 구레나룻형 청 홍 전선 두 가닥

천장을 떠메고 지붕을 떠메고 날아가거나 통 채로 주저앉거나

휘청휘청 줄사다리를 타고 구름에 실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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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다보던 시선을 아래로 더 더 더 아래로

무릎을 꿇고, 연골이 닳아 삐걱거리는 노구를 끌며

침대 바닥 장롱 틈 틈까지 긁어보아도 당겨보아도 먼지뿐일 때

어둠은 송곳처럼 서서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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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비는 서랍에 갇히기를 싫어하고

모든 나비는 강철 핀을 싫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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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나비나사는 없어요, 새 등을 맞춰놓고 돌아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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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사방에서 난반사하는 빛나비떼 점 점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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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현대시》 2022년 3월호

1942년 경남 통영 출생
1967년 부산대 졸업
198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2003년 제4회 《현대시 작품상》 수상
시집으로 『 괄호 속의 귀뚜라미』『구절리 바람소리 』
 『내 눈앞의 전선 』『山詩集  』『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햇살 통조림』
 편저『윤극영전집 1,2권 』산악관련 저서로 『금강산은 부른다 』
 산행에세이『산아, 산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