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이사 / 김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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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28회 작성일 22-04-26 16:34본문
멀고도 가까운 이사
김이듬
1
가구들이 다 나갔어 집은 텅 비었고 보일러는 망가졌어
이사업체 인부들에게 네 침대를 팔았어
커튼 뒤에 숨겨놓았던 술병들도 버렸어
우리의 고양이도 창문으로 도망가버렸지
해가 지면 찾아오는 한기처럼 언제나 문을 두드리는 건 추위와 고독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창문에 네 이름을 쓴다
어둠이 흐르고 공기에는 기억이 배어있다
2
집은 여전히 공사 중이야 네가 없으니 앞으로 나는 되는대로 살게 되겠지
육체의 굴레가 있어 사유도 있다고 했던가
우리는 싸웠지 너는 일어난 일을 생각했고 나는 일어날 일을 생각하느라
나는 여전히 공사 중이고
제발 그를 네 옆에 앉히지 마
내면의 폭풍과 오해는 좋아하는 음악처럼 나를 변화시킨다
음악은 지나가는 법, 도무지 음악인 것 같지도 않았는데
3
아무도 초대하지 않아
나를 허물고 다시 기본 골격을 세워야 했어
발목이 부었어 현기증과 수면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새집은 늘 이런 거래 페인트 냄새로
집주인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그녀는 말했지 희고 부드러운 벽을 망치지 마세요
네가 없는 인생은 잘못 임대한 집같아
함부로 자국을 남길 수도 떠날 수도 없어
―계간 《열린시학》 2021년 봄호
경남 진주 출생
2001년 《포에지》등단
부산대 독문과 졸업. 경상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시집으로『별모양의 얼룩』,『명랑하라 팜 파탈』』『말할 수 없는 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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