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문 / 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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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문
손 미
초희(楚姬)*
붉게 터진 네 아기를 찾으러 갈 시간 너는 맨몸으로 딱딱한 무덤
을 나와 우주에 떠 있는 고아원으로 가자 측백나무 가지가 길게 삐
져나온 별 하나를 찾자 언젠가 지나오는 길에 노란 손수건을 매어
둔 것 같은 나무가 있다
스물일곱 송이 꽃이 폈고 비로소 우리는 가장 아픈 꼭짓점에 섰지
토성의 달들이 우리의 소풍을 반겨줄 것이다.
초희, 달아나자 우주를 향해 네 것인지 내 것인지 머리카락 뜯으
며……가는 길 어디쯤 앉아 단 한 번만 춤을 추자 네 시를 비웃던
남자와 내 삶을 비웃던 애인이 모퉁이에서 만나 웃거나 혹은 외면
하겠지
문 밖에서 우주가 울고 있다
문을 열면 고아처럼 버려진 것들이 젖을 찾아 온몸에 파고들어
초희, 우리는 가서 이름 없는 것들의 어미가 되자
우리, 가는 길 어디쯤 앉아 별의 꼭지를 잡고 단 한 번만 웃거나
울자 스물일곱 송이 꽃이 졌고
사자가 먹은 제 새끼를 생각하는 기린 한 마리가 우리를 배웅해
줄 때 미리 와서 떠돌던 스푸트니크의 개가 마중 나오는 그림자가
보인다.
자, 이제
* 초희楚姬 : 허난설헌의 이름
―2009년 계간 《문학사상》 시 당선작

1982년 대전광역시 출생
2009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양파 공동체』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산문집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상합니까?』
제3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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