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봄밤 / 고두현 > 오늘의 시

부석사 봄밤

​ 고두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가만히 손 대고 눈 감다가

일천이백 년 전 석등이

저 혼자 타오르는 모습

보았습니다.

​

하필 여기까지 와서

실낱같은 빛 한줄기

약간 비켜선 채

제 몸 사르는 것이

​

그토록 오래 불씨 보듬고

바위 속 비추던 석등

잎 다 떨구고 대궁만 남은

당신의 자세였다니요.​

―고두현 시집,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랜덤하우스중앙, 2005)

1963년 경남 남해 출생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늦게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마음 필사』 등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