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 / 장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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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
작은아버지 돌아가신 지 서너 해가 지났다
명절마다 고기 두어 근 끊어 찾아뵀지만 이젠 갈 수가 없다
부재 때문이라지만
딱히 부재라고도 할 수 없다 그 낡은 아파트 찾아가면 당장이라도 뵐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고기는 드실 수 없다
몸이 없기 때문이다
허나 몸이 없는 건 아니다
사촌이 자기 아버지를 고이 빻아 제 방에 모시고 있으니 말이다 빚 피해 필리핀으로 도망간 아우들 돌아오면
예 갖추어 보내드린다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건 저도 나도 다 안다
경제보다 섭섭함이 형제를 갈라놓았을 거라
짐작한다 섭섭함이 어디에 서식하는지 알 수 없다 섭섭함은 워낙 복잡한 얼굴 지녔기 때문이다
아내도 아이도 없는 사촌은 치매에 빼앗긴 노모를 모시고 산다 아니 노부도 함께 모시고 산다
노모가 노부와 말 주고받는지
알 수가 없다
따져보면 내가 뭘 아는지 알 수가 없다 나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계간 《청색종이》 2022년 봄호

1955년 경북 선산 출생
계명대 국문학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졸업
1987년 《세계의 문학》 등단
시집 『황금 연못』 『바퀴 소리를 듣는다』 『하늘 우물』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 등.
동시집 『내 배꼽을 만져보았다』
김달진문학상, 일연문학상, 노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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