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경 / 윤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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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83회 작성일 22-07-21 12:52본문
초경(初經)
윤진화
검은 숲에서 북소리 들려온다 짐승의 정강이뼈를 들고 북치는 봉두난발 소녀가
나온다 벗겨 말린 털로 버찌 같은 젖꼭지 가리고 솜털 솟은 아랫도리 숨겼다 소녀의
목에는 송곳니로 엮은 목걸이 걸려 있다 머리 위로 초생달이 떠 있다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매 한 마리, 설화 가득 핀 나뭇가지의 잔설(殘雪) 떨구며 날아오른다 멀리 별똥별이
밤공기를 세차게 가른다 소녀가 달을 꺾어 손에 쥔다 둥 두둥 붉은 달이 떠오른다 유년의
숲속에선 사라진 달을 찾는 장작불이 타오른다 밤하늘을 숨죽이며 날고 있는 매가 머리
위에서 춤춘다 허공에서 휘이익, 한 바퀴 돌던 달이 날개를 펼친 매 대가리에 꽂힌다
깃털이 소녀의 머리 위로 내려앉는다 숲속 마을까지 비릿한 사냥꾼의 냄새가 술렁인다
허리춤에 사냥한 매를 단단히 꿰는 소녀, 매의 피가 소녀의 가랑이를 타고 흐른다
―윤진화 시집 『우리의 야생소녀』 (문학동네, 2011)
1974년 전남 나주 출생
국립서울산업대 문예창작과,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창과 졸업
2005년《세계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우리의 야생 소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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