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토인형 / 진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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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토인형
진혜진
1
어둠과 빛은 붉은 진흙의 심장을 가졌습니다
흑과 백을 쥔 채 우리는 너무 단단해서 어쩌면 텅 빈 속입니다
2
당신은 나를 비 맞은 매화나무로 베어내고 속을 묻습니다 손에 쥐었던 새를 공중에 날리면 젖은 손바닥에서 어둠의 길목들이 생깁니다
매일은 빚어집니다 가짜가 진짜로 바뀔 때 비로소 충돌하는 어제가 빚어집니다 이쪽에서 보면 우리는 만나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한 쌍의 인형처럼
3
순간이 흙인 사람이 있습니다
순간은 순간을 닮아 태어나므로 잘못이 없을까 한 번 더 만져봅니다
모든 끝은 스며들다 사라집니다 한 번도 순간에게 나를 내준 적 없는데 당신과 흑백은 그 이후가 됩니다
버려진 흙처럼 세상에 없던 이방인들이 내 안에 군중을 이루고 있습니다 붉은 심장은 만들어지는 것이라서
다시 생생하게 부서져야 살아서 만날 것입니다
―《에세이 문학》 2021년 가을호
경남 함안 출생
2016년〈경남신문〉,<광주일보〉신춘문예 당선
2016년《시산맥》등단
시집 『포도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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