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당나귀 / 유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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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풀꽃문학상 젊은시인상 수상작]
분홍 당나귀
유미애
옆모습에 관한 전설 하나 들려줄까?
내 왼쪽 얼굴은 이야기꾼이었지
청중이 던져주는 꽃을 뜯어 먹으며
갈채라는 날개를 퍼덕이며 조금씩 날아올랐지
별에서 별로 옮겨 가는 주인공과 낭만적인 문장들
그러나 빈 화병이 뒹굴 때면 그믐달처럼 희미해져 가는
반대편 얼굴을 내려다보며 눈물 흘렸지
어느 바람 부는 저녁
목젖을 빠져나온 글자들이 입술 밖으로 뛰어내릴 때
그는 새로운 꽃을 찾아 떠났지
거문고를 메고 파교*를 건너, 겨울 골짜기를 헤맸지
마침내 늙은 나무 아래 닿아 거문고를 탈 때
오색 고깔에 필묵을 든 달이 봉우리 위로 솟아올랐지만
긴 혀를 접으며 그가 다리를 건너오고 말았지
벌름거리는 코와 만단설화를 잃어버린 이 행성이
점점 기울어지고 있었기 때문 내 오른쪽 얼굴이
꽃씨 대신 얼음 조각을 키우고 있었으니까
홀쭉한 그 뺨의 수수께끼가 이야기의 시작이었으니까
파지와 고지서가 얽힌 방 나른한 연필 끝으로 돌아와
제 그림자를 밟고 있는 분홍 발굽, 면할 수 없는 내 죄는
산경山經 해경海經, 괴기 발랄한 그 어떤 이야기에도 미혹되지 못한 것
다시 바람이 부네
*파교 : 맹호연이 첫 매화를 찾아 건너갔다는 다리
1961년 경북 출생
2004년 《시인세계》등단
2009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음
시집『손톱』 『분홍 당나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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