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여자 / 이윤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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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35회 작성일 22-09-16 20:39본문
성난 여자
이윤설
시장 다녀오는 길에 골목 끝에서부터
몰아치는 악다구니 여자 목소리
하늘 높이 치솟아 욕을 해대는데
여자를 찾을 수 없다 모자가 벗겨지듯 지붕이 날아가고
간판이 데굴데굴 굴러 전봇대를 들이받는다
양은 대야가 챙챙 울부짖다가
훌쩍 허공으로 날아갔다
비눗물이 뿌려져 비눗방울들이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질끈 감는데
저 복장 터지는 목소리의
첩첩 광활은 어디 있나
까마득히 먼 북쪽 우랄알타이 산맥을 넘어
출렁이는 젖을 물린 채 사납게 먹이를 낚아채 깔깔거리며
지평선을 달리던 초원의 여자는
고려청자도 이조백자도 들까부수는
저 암팡진 본데없는 여자는 어디 있는가 사내들 두리번거리고
온 천지를 치대는 저 성난 여자
한 번도 문 밖으로 떠나보지 못했던 것들만
골목을 껴들어 떠내려가는데
얼굴 없는 낯을 붉히는 저 여자
성난 소리만 잔뜩 쏟아놓고 어디에 꽃같이 숨었나
울끈불끈 불을 뿜는 붉게 물든 목소리의 골목을 보여다오
장쾌도 우렁찬 그 목소리의 고향을 보여다오
구경꾼들 성나기 전에
힘껏 걷어차 성나듯 나와봐라
―이윤설 시집,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 (문학동네, 2021)
1969년 경기 이천 출생
명지대 철학과 및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
2005년 국립극장 신작희곡페스티벌, 거창국제연극제 희곡 공모 대상
2006년 <조선일보>와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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