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聽診) / 이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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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262회 작성일 16-01-26 13:13본문
청진(聽診)
—북아현동
이현호
나는 올해로 서른세 살이 되었다
누구보다도 오래 살았고 누구보다는 일찍 죽는다
그때로부터 오늘까지 지금으로부터 그날까지
내 모든 시차의 별자리들이 떨어져 내리는 밤
당신의 이름을 부표로 띄우고, 마음의 수위를 더듬는 밤
오래 돌보지 않은 불행에게도 정이 드는 밤
급한 마중을 하려는 듯 긴 골목을 맨발로 뛰어나가는 바람 속에서
웃음소리가 높고 맑았던 소현이나 제법 점을 잘 쳤던 장호 같은
너무 젖어서 떠오르지 않는 얼굴들을 건지다 보면
국제나 굴레방이란 이름의 여관방을 넘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오늘은 기일, 세상의 매일은 누군가의 기일
나의 울음을 나에게 들려주는 날
가난한 이의 마음은 더 가난하고, 가난보다 더 가난한 마음들
밤늦도록 깜박이는 술집을 비틀대며 나오는 단벌의 영혼들
십수 년 만에 어두운 천체를 찢고 가는 떠돌이별들
밤의 척력에 떠밀려 서로의 등을 마주 보이며 멀어지면
그 사이를 스치는 바람에게선 유독 낙엽의 맛이 돈다
언젠가 악수한 적 있는 시간의 손가락은 그새 많이 야위었다
생활을 무너뜨린 자리에 생활을 다시 짓는 농담이 유행하는
북아현동, 우리는 이곳에서 여러 잠을 잤다
북쪽에 머리를 두고 자면 안 된다는데, 당신은 잠이 참 많아서
올해도 스물아홉 살이 되었다
지금부터 그때까지 오늘부터 그날까지
누구나 가슴을 허물어 내압을 확인해야 하는 날이 있고
이 별의 반대쪽에도
언 창문에 귀를 대고 숨소리를 청진하는 넋이 있겠다
1983년 충남 연기 출생
2007년《현대시》로 등단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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