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 / 임동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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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
임동확
누가 이 깊은 밤 핸드폰 벨을 다급히 울리나
나 한 순간도 수꿩 울음 끊이지 않은 사월의 뒷동산
금세 피었다 지는 개나리꽃이나 그 울타리 아래
수줍게 고개 내민 제비꽃처럼 그렇게 너와 함께
질긴 그리움의 천을 짜며 노래하고 있었거늘
누가 슬피 울며 어디로 날 찾아다니는가
네 집앞 은행나무 사이 나트륨 가로등처럼 그렇게
곧잘 술 취해 담벼락을 더듬으며 귀가하곤 하는
너의 모습을 가만 지켜보며 여기까지 왔거늘
아, 그러나 어느새 이리 늙고 병들고 눈먼 것,
오늘 다시 너와 마주앉아 오래 아파하는 것
그 어떤 몸짓 하나 너와 무하지 않거늘
급기야 그 누가 잠긴 방문을 차고 들어오려는가
피할 수 없는, 피해갈 수 없는 세월 속에서
오래 전에도 나는 여기 있었고,
앞으로도 차마 떠나지 못해 여기 남아있을 것이거늘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오직 너는 나의 너였거늘
―임동확 시집,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 (실천문학, 2005년)
1959년 광주광역시 출생
서강대 국문학과 대학원 박사
1987년 시집 『매장시편』으로 등단
시집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 『운주사 가는 길』 『벽을 문으로』
『처음 사랑을 느꼈다』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길은 한사코 길을 그리워한다』
시화집 『내 애인은 왼손잡이』,
산문집 『들키고 싶은 비밀』 시론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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