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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이란 제목 / 김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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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60회 작성일 22-10-11 11:07

본문

맨홀이란 제목

 

   김충규

 


당신 살결에서 맨홀 냄새가 나요

맨홀 속에 죽은 나비들이 바글바글


길이 되지 못해 질주하는 강이

질주하지 않으면 썩어버리는 강이

당신의 등 뒤에 가득합니다


강물로 당신의 살결을 내가 씻어줄 것 같나요

그냥 등 돌릴 것 같나요 맨홀 속에 가득한 죽은 나비들 중에

살아 있는 나비가 있을까요

그게 질문인가요? 라는 표정으로 당신은 무심히

나를 멸시합니다 말없이 표정만의 멸시가

얼마나 후끈거리는지 당신은 모르시는 듯합니다


벽화 속에 당신을 가두는 상상을 합니다

생생한 벽화를 보려고 몰려올 사람들에게서

입장료를 받아도 될까요? 이것만은 당신에게 허락을 구하고 싶습니다

벽화에서도 맨홀 냄새가 나면 어쩌지요


맨홀 속에서 일생을 살았다는 사내를 압니다

그 사내는 죽은 나비를 먹고 연명했다고 합니다

그 사내가 나인지도 모릅니다 내 최종 목표는

당신을 강이 아닌 맨홀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용서하세요 당신 살결의 맨홀 냄새를 씻어주고 싶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그리 착한 사람이 못 됩니다

당신을 강 속으로 밀어버릴지도 모릅니다

내 속에 죽은 나비가 바글바글하니까요


기괴한 사내의 꿈 얘기일까요? 그 사내가 나인지는

정말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 발언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만 씻으러 강에 가겠습니다

 

김충규 시집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문학동네, 2013)


 

 

1998년 《 문학동네》문예공모 시 당선
시집 『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물 위에 찍힌 발자국 』
『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아무 망설임 없이』
유고시집『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오월문학상, 미네르바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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