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나무 / 유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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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87회 작성일 22-10-25 13:23본문
멍나무
유현서
나는 당신을 멍나무라 부른다
멍이 없으면 이 세상 아픈 말씀들 갈 곳이 없어진다
구멍구멍 희푸르게 앓는다
내가 뱉어낸 상처투성이의 말들이, 당신이 절벽처럼 응수한 비수(匕首) 품은 말들이
허공으로 솟구치다 안착하는 곳
그에게 수신되지 않고 당신에게 송신되어 곧바로 순해지는, 덕지덕지 꿰맨 상처
비틀거리는 노숙자도 지겟작대기 부러져라 두들겨 맞던 망아지도 수놈들의 발정에
붙이던 분녀(粉女)의 질퍽한 욕지거리도 넥타이의 주먹감자도 앳된 며느리의 눈물방울도
오지게 품고 나서야 비로소 완벽해지는 당신,
갈 곳 없는, 구중심처(九重深處)에서나 떠돌 말들이 붕붕―,
시퍼런 이파리로 환생하는 나의 플라타너스!
깊은 멍을 가진 사람만이 머물게 만든다
그의 그늘이 만평이다
―유현서 시집 『당신을 다루는 법』 (지혜, 2019)
강원도 원주 출생
2010년 《애지》로 등단
시집 『당신을 다루는 법』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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