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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속의 달빛 여우 / 윤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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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721회 작성일 16-02-02 09:39

본문

 

사과 속의 빛 여우

 

  윤정구

 

베어 문 사과 속에 달빛 한 입 묻어 있다

 

고향에서 보내온 풋사과 맛의 골짜기 어디쯤

길이 끊기고 멸악산 갑자기 높아져서

캉캉 여우 울음소리가 하늘로 퍼져 올라갈 때

 

사과나무도 분명 그 날카로운 여우 울음소리를 들었으리라

한낮에는 댑싸리 빗자루보다 더 길고 풍성한 꼬리를 끌고

부드럽게 보리밭 끄트머리로 걸어 나오던 그 여우의

송곳처럼 날카로웠던 울음소리

 

잡목 우거진 여수골의 밤 달빛이 얼마나 고혹적이었는지

밤길을 잃어버려본 사람들은 안다

 

눈 속에서 낙엽 속에서 녹음방초 속에서 여우는 그렇게 숨어서 울었지만

 

사람들이 그 여수골 입구를 일구고 사과나무를 심어나가자

여우는 마침내 마지막 울음을 남기고는

나무 사이 푸른 달빛을 타고 멸악산 등성이를 넘어갔다

 

달빛 묻은 사과를 한 점 베어 먹는다

손전등처럼 반짝이던 두 눈, 달빛 여우가 보인다

 

 

경기도 평택 출생.

고려대학교 졸업. 충남대학교 대학원 수료.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눈 속의 푸른 풀밭』『햇빛의 길을 보았니』『쥐똥나무가 좋아졌다』『사과 속의 달빛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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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맛이깊으면멋님의 댓글

profile_image 맛이깊으면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여우, 이제는 사라진 것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고향 사과밭에서 길러낸 사과를 받아들고 한입 베어먹는다.
한웅큼 베어 물며 달빛 가득했던 고향, 멸악산에  살았던 여우, 여우 울음소리를 기억한다.
보리밭, 아마도 남도의 청보리밭이 아닐까.
그 보리밭 사이로 나오곤 했던 풍성하고 아름다운 꼬리를 지닌 여우의 높은 음자리표의 울음소리를.


78년도의 어느 겨울날.
막차로 내렸던 이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인적이 끊긴, 보름달빛만 가득 찼던 고개를 넘던 날, 그리고 역시 충청도 어느 산골 암자를 향해 산림의 오솔길을 걸어 오르던 날, 높이 솟은 커다란 보름달빛이 노랗게 반짝이며 부서지던 모습이 고혹적이라는 말로 살아났다.
나 역시 밤길을 잃어버렸었기 때문이다.

​눈 속, 낙엽 속, 녹음방초 소, 즉 사시사철 여우는 함께했었다.

텃밭을 일구고 살던 여우는 여수 골 입구부터 일궈진 사과밭이 점차 그 면적을 넓혀나가자, 마지막 울음소리를 남기고는 멸악산에서 사라져버렸다.

​달빛 내리는 날, 그 여우의 울음소리를 들은 사과 나무에서 열린, 사과의 과육을 베어 물 때마다 그 여우가 되살아 난다.

​여우는 한때, 친숙했던 동물이었다.
여우골, 여우재 등의 이름은 전국 어디서나 쉽사리 들을 수 있는 지명이었다. 그랬던 것들이 일제시대를 거치며 거의 멸종에 가까운 화를 입었고, 이후에는 전국적인 쥐잡기 운동을 통해 자취를 감추게 됐다.
최근에는 토종 여우 복원 사업을 통해 소백산에 방사되어 종의 복원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전설 따라 삼천리에서는 구미호라는 요사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사람의 혼을 뺄 정도로 아름다운 꼬리를 지녔다는 것임을 보여주는 상징성이 크다 하겠다.

여기서 보여주는 여우는, 신비롭고 아름다울 거라는 상상력에 달빛이 더해지면서 더욱 고혹적스럽다.


사과와 여우라는 전혀 아무 연관도 없을 법한 상관관계를 달빛이 이어준다.
사과, 여우, 달빛 모두 서로 간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들이지만, 멸악산 여수 골이라는 지역으로 특정 지어주면, 그 상관관계는 순간 또렷하게 공감대가 만들어진다.


멸악산의 여우를 대신하여 들어선 사과밭.
이제는, 한때 같이 했었으나 사라져버린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들이 주는 정서가 아련하다.


2020.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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