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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 위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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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34회 작성일 22-12-18 20:45

본문

 

    위선환

 

몸속에 가시뼈를 키우는 물고기가 자라나는 가시뼈에 속살이 찔리는 첫째 풍경 속에서는

몸속에 두 귀를 묻어버린 물고기의 몸속보다 깊은 적막을, 적막하므로 무한한 그 깊이를

누가 내 이름이라 지어 불렀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눈 뜨고 처음 내다본 앞바다에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는 둘째 풍경 속에서는

야윈 손이 반음씩 낮은 음을 짚어가는 저녁 무렾에 어둑하게 어스름이 깔리는 음조를

새들은 어둔 하늘로 날고 살 속에서는 신열을 앓는 뼈가 사뭇 떠는 오한을

누가 내 이름이라 지어 불렀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잠깐씩 돌아다본 들판에 돌아다볼 때마다 눈발이 굵어지는 셋째 풍경 속에서는

눈꺼풀에 점점이 점 찍힌 점무늬 아래로 한없이 떨어져 내리는 반점들의 하염없는 나부낌을

아득하게 깊어진 눈구멍 속에서 속날개를 털며 자잘하게 날갯짓도 하는 설렘을

누가 내 이름이라 지어 불렀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물굽이와 들판과 나를 덮고 묻는 눈발이 자욱하게 쏟아지는 마지막 풍경 속에서는

천 마리씩 떨어지는 여러 무리 새떼들이 바짝 마른 가슴팍을 땅바닥에 부딪치며 몸 부수는 저것이 폭설인 것을

내리 꽂고 혹은 치솟는 만 마리 물고기들은 물고기들끼리 부딪쳐서 산산조각 나는 것 또한 폭설인 것을

따로 이름 지어 부르지 않았다. 깜깜하게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누구인가 그가!

내 이름이라 지어 불렀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 2009현대시학작품상 수상작

 

위선환 시집, 수평을 가리키다(문지, 2014)


 


1941년 전남 장흥 출생

1960년 용아문학상 수상
2001년에 월간《현대시》를 통하여 작품활동을 재개
2009년 현대시작품상 수상
시집 『나무들이 강을 건너갔다』『눈덮인 하늘에서 넘어지다』
『새떼를 베끼다』『수평을 가리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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