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 / 채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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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76회 작성일 22-12-29 20:21본문
오염
채수옥
비닐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써야만 당신을 만질 수 있다
당신은 다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것으로 이 세계를 방치한다
위험한 물질로 분류된 내가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이곳,
시트에 묻은 혈흔 같은 얼룩들이 당신에게서 빠져나와
내게 스며든다
- 꼭 너 같은 새끼 낳아서 키워 봐라
던져진 장갑처럼
펼쳐진 손금 밖으로 계단이 흘러간다
새로 태어난 눈보라가 언덕을 넘어오고, 신발 한 짝
뒹구는 수수밭에 죽은 물고기들이 떠올랐다
쪼글쪼글 껍질만 남은 감자
스스로 아가미를 열고 닫을 수 없는 당신을,
가장 치명적으로 오염시킨 내가 묻는다
- 나 알아보겠어?
내가 낳은 그림자들이 내 얼굴을 침대 아래로
밀어 버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각자의 얼굴을 주워 들고
중환자실을 떠났다
―채수옥 시집, 『오렌지는 슬픔이 아니고』 (파란, 2019)
2002년 《실천문학》 등단
시집 『비대칭의 오후』『오렌지는 슬픔이 아니고』『덮어놓고 웃었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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