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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에는 약 냄새가 나고 / 전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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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09회 작성일 23-01-31 12:46

본문

내 피에는 약 냄새가 나고

 

   전동균

 

 

내 입속엔 얼어붙은 눈

내 발목엔 진흙들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닐 뿐이에요

바람 속을, 한밤 같은 햇빛 속을

수많은 그림자들을 품으며 버리며 지나왔죠

한 모금의 커피

새벽의 담배

그것들이 나의 신이었다고 차마 말할 순 없어요

말해지지 않는 것들을 위해

말이 있으니

나는 지푸라기, 녹슨 칼, 펄펄 끓는 물,

다시는…… 다시는……

날마다 용서를 구하는

끝없이 기도를 배반하는

내 손은 차고 입술은 뜨거워요 내 피에는 약 냄새가 나요

세상이 나에게 가르친 건

밥그릇 앞에선 고개를 숙이라는 것, 하지만

고개가 발바닥에 닿아도 세상은 털끝 하나 바뀌지 않았죠

내 눈엔 모래들

내 발목엔 엉겅퀴 가시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를 위로할 수밖에 없죠

아주 먼 데서 아주 환하게

사람들은 펄럭이고

오늘은 나는

무덤 옆에서 춤을 추는 소나무들 속으로 걸어가요


계간 로 여는 세상2022년 겨울호


 

1962년 경주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6년 《소설문학》신인상 당선
시집 『오래 비어 있는 길』 『거룩한 허기』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
『우리처럼 낯선』 
당신이 없는 곳에서 당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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