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 손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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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36회 작성일 23-02-26 20:32본문
곰
손진은
도서관에서 나와 잠깐 쉰다는 게
공원 벤치에 큰대자로 곯아떨어진 사내
행인들 인기척 담배 연기에도 기침 한 개비 없이
이마에 땀 흥건해질 때까지 자다
천둥 번개가 후려쳐 한참을 멍하니 앉은,
어느새 몸속에 덩치 큰 곰이 들어와 앉은 사내
그래도 그는 좋다, 초록 외엔 아무도 없는 공원
빗방울만 후두둑 몸을 깨우는 숲이!
무얼까?
곰, 그쪽과 맞닥뜨린 세월도 없는데
긴 공용의자, 그 노상침실에 그를 눕히고 비끄러맨 건,
그 사이, 생로병사 네 글자가 우지끈 끊어지며
마디마디 곰의 사지를 이어준 건,
그렇담 어떻게 덩치 큰 저 곰을 끄집어내나?
풀잎부터 가지 열매 들짐승
잡식의 그를 무슨 힘으로?
일단 오늘은
열람실까지 놈 잘 밀어넣고
착해진 몸으로 야생의 열맬 훑어먹는 걸 지긋이 바라보다가
슬슬 가방을 싸고 냄샐 맡으며 동굴로 향하는
놈의 짧고 굵은 다리를 따라 어슬렁
저물어보기로 한다
큰 덩치의 놈을 따르는 일이 어딘가?
오소리 들쥐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잠의 기억을 털며 돌아가는 길
―계간 《신생》 2022년 가을호
경북 안강 출생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5년 매일신문 시평론에 당선
시집 『두 힘이 숲을 설레게 한다』 『눈먼 새를 다른 숲에 풀어놓고』
『그 눈들을 밤의 창이라 부른다』
저서 『현대시의 미적 인식과 형상화 방식 연구』 『한국 현대시의 정신과 무늬』
『현대시의 지평과 맥락』 『현대시의 미적 인식과 형상화 방식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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