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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래된 미래 / 이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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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35회 작성일 23-03-01 19:30

본문

, 오래된 미래

 

      이덕규

 

 

큰 거래는 쌀가마였고 작은 거래는 잡곡이나 과실을 말과 되로 담아 셈을 했던 그때

백미 한 가마니면 안 되는 일이 거의 없었던 그때

쌀로 돈을 사고 잡곡으로 물품을 사던 그때

달걀로 공책과 연필을 바꾸었고 형제들 머리 깎은 삯은 일 년에 한 번 보리쌀로 건너갔던 그때

가끔씩 물목이 단출한 보따리나 좌판이 마실방 툇마루에 펼쳐졌던 그때

팥 한 되에 나이롱 양말 여섯 켤래, 들깨 두 되에 쫄쫄이바지 두 벌, 양은그릇 열두 개에 서리태 네 되

남도 꿀 됫병들이에 수수 한 말, 어쩌다 통 크게 쌀 한 말이 장남의 두꺼운 잠바와 맞바꿔졌던 그때

 

짐승들도 물목 중의 하나였던 그때

외양간의 송아지와 마루 밑에 강아지와 울 밑에 돼지 새끼들과 봄 마당에 그득한 닭과 노란 병아리들,

때가 되면 그 마당식구들 먹이부터 챙겼던 그때

제삿날이면 닭을 잡았고 설날엔 온 동네가 구수한 시래기 순댓국과 돼지고기를 먹었던 그때

나머지 짐승들은 일 년에 한 번 가리내 장터에서 이웃 동네로 팔려갔던 그때

그 덕으로 아들 하나가 대학에 갔던 그때

 

오 일에 한 번 서는 장날은 만물이 세상에 나오는 날, 없는 게 없었던 그때 하릴없이 계란 꾸러미를 들고

장 구경 나온 사람들이 태반이었던 그때

상점이나 노점에서는 돈거래보다 현물 거래가 많았던 그때

닭 오리 강아지 염소 장목수수빗자루 싸리비 지게 바수구리 삼태기 망태 멍석 덕석 도리깨 갈퀴와 각종 연장자루

억센 손이 꽉꽉 조여 만든 수제 연장들이 장마당에 즐비했던 그때

고무신과 장화 때우는 신기료장수들 사이로

밑천 하나 없이 순전히 입으로만 손님을 끌어모으는 야바위도 섞여 있었던 그때

바꾸지 못했거나 팔지 못한 물건들은 파장에

양조장 집으로 몰려와 막걸리 잔술에 넘기거나 다음 장날까지 맡아두었던 그때

장꾼들 손에 자반 한 손이 새끼줄에 매달려 흥얼흥얼 집으로 돌아가던 이슥한 밤길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까지 부르고 매번 다시 돌아가 부르는 재당숙의 골백번 으악새로 휘영청 밝았던 그때

 

돈 셈은 느렸지만 물물 흥정은 빠르던 어르신들 쌈지에 더러 돈 들었어도 귀해서 쓰지 못하던 그때

남도에서 올라온 장정 상일꾼의 일 년 새경이 쌀 여섯 가마였고

보리쌀 한 말이 여자 사흘 치 품삯이었던 그때

어린 것들이 논두렁 밭두렁 뛰어다니며 군것과 심부름을 바꿔먹던 그때,

내가 그리고 우리가 감히 물물교환 시대를 살았던 그때

 

계간 시산맥2023년 봄호





1961년 경기 화성 출생
1998년 《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 』『밥그릇 경전』『놈이었습니다』등

2004년 제9회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제4회 시작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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