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백숙 / 박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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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백숙
박수서
오리 정도는 가도 발병 안 나겠지, 거뜬히 가겠지
아, 사람아
당신 얼마나 가버렸어
오리는 지나갔지
나도 진즉 밥상에 앉아 오리는 목구멍으로 넘겨버렸어
스웨터 올처럼 빠져나온 고동색 기억이
목구멍을 근질대서 간신히 넘겼어
오리를 먹는데 수 십 리는 씹은 것 같아
기억이 그렇게 질기고 단단한 줄 이제야 알았어
살이 되고 피가 되는 한여름 백숙이 오리라면,
한 종지도 못 되는 간장이 사랑이었어
짜고 달아서 화음이 끊긴 허무였어
씹어도 씹어도 찢기지 않는 그리움이었어
땀 뻘뻘 흘리며 오리백숙을 다 뜯었는데도 아직,
그리움은 오리무중이야
―박수서 시집, 『내 심장에 선인장 꽃이 피어서』(문학과사람, 2021)

1974년 전북 김제 출생
2003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 『박쥐』 『흑백필름 속에서 울고 있다』 『공포 백작』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해물짬뽕 집』 『내 심장에 선인장 꽃이 피어서』 등
제8회 시와창작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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