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으로 쓰는 메주 / 장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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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으로 쓰는 메주
장종권
술에 취한 남정네 팥으로 메주를 쑨다. 들판 가득한 팥다발에서 아라리 팥알들이 쏟아진다. 마당 멍석 고샅머리 멍석에도 쓰라린 팥알이 지천이다.
술에 취한 여편네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아라리 팥알들,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쓰라리 팥알들, 알알이 팥 사태가 났다. 덕분에 팥으로 메주를 쑨다.
콩메주에는 곰팡이가 피지만 팥메주에는 팥죽꽃이 핀다. 콩메주에서는 썩은 냄새가 나지만 팥메주에서는 팥꽃 향기가 난다.
메주가 되거나 말거나, 간장이 되거나 말거나, 할머니 우시거나 말거나, 어머니 넋이 나가시거나 말거나, 넘치는 팥알 거두어 부지런히 메주를 쑨다.
아리리난장, 아라리팥장, 새길 내다 죽은 새길팥 걷어 죽 쑤던 놈들 다 죽었다.

1955년 전북 김제 출생
198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아산호 가는 길』 『꽃이 그냥 꽃인 날에』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호박꽃 나라』
장편소설 『순애』 창작집 『자장암의 금개구리』 등
2000년 인천문학상, 2005년 성균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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