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 저녁에 대하여 / 송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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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541회 작성일 23-08-01 16:41본문
다시 그 저녁에 대하여
송진권
뭐라 말해야 하나
그 집 지붕 아래 수수깡 드러난 처마에 대하여
서까래를 밟으며 지나간 검댕 묻은 전깃줄을
꼬옥 쥐고 있던 애자에 대하여
처마마다 한 발이나 되게 매달리던 고드름들에 대하여
댕그랑댕그랑 톰방톰방 뚝뚝 똑똑
오도독 오독 하며 함께 살던 소리들에 대하여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의 사진이 걸린 파리똥 앉은 사진틀에 대하여
저녁거리 시래기를 내리던 마른 손에 대하여
서까래에 매달렸던 씨갑시 봉지들에 대하여
제비 똥 떨어지지 말라고
제비 집 아래 달아둔 송판에 대하여
처마 밑에 매달린 둘둘 말린 멍석이며
양말 주머니 매달고 있던 기다란 감전지에 대하여
고드름 떨어지는 소리에 놀란 개가
컹컹 짖던 것에 대하여
어떻게 다 말해야 하나
그득 불을 문 아궁이에 대하여
처음 내게 불을 피우는 걸 알려주던 이에 대하여
재를 헤집으면 나오던 감자알이며
아궁이 속에 살던 강아지들에 대하여
어떻게 다 말해야 하나
숯검댕 묻은 굴뚝새에 대하여
시래기 삶는 내며
쇠죽 끓이는 냄새를 맡고
빼꼼히 들여다보던 송아지 콧구멍에서 나오던 허연 김에 대하여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 2023년 6월호
1970년 충북 옥천 출생
방송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2004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으로 『자라는 돌』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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