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자갈 / 표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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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자갈
표성배
자갈자갈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가 세상 처음 소리처럼 맑다 상수리나무 우듬지를 쓰다듬고 내려온 아침 햇살 포근한 길, 이리도 맑은 소리 들어본 적 언제였던가
내 마음은 아래로 아래로 잦아드는데, 오늘 아니면 언제 말하랴 싶은지 아내는 쉴 새 없이 자갈자갈거린다 당신과 함께 낙엽을 밟으니 좋다느니 이름 있는 등산길보다 이런 호젓한 길이 좋다느니 살가운 말 붙이지만 낙엽 밟는 소리에 묻힐 뿐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상수리 나뭇잎은 상수리 나뭇잎대로 할 말 많다는 듯 자갈자갈 사연을 풀어놓느라 바쁘고 아내는 아내대로 밀린 이야길 하느라 바쁘다
나는 앞에 걷고 아내는 뒤에 걸으며 자갈자갈 사연을 풀어놓는 상수리 나뭇잎이나 아내의 살가운 말을 나는 좁쌀내기처럼 다 받아주지도 못하고 자꾸 길을 놓치고 만다
-표성배 시집 『자갈자갈』 (도서출판b, 2020)

1966년 경남 의령 출생
1995년 제6회 '마창노련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아침 햇살이 그립다』 『저 겨울산 너머에는』
『개나리 꽃눈』『공장은 안녕하다』『기찬 날』『기계라도 따뜻하게』
『은근히 즐거운』 『자갈자갈』
시산문집 『미안하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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